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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히말라야 슈바이처
강원희 저 I 규장 I 2011-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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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고 병든 자가 있는 곳은
어디든 간다!!
선교지에 심장을 묻기 위해 다시 히말라야에 오르다!
30년 인생 황금기를 네팔,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에티오피아에서 보낸
<소명3-히말라야의 슈바이처> 주인공 강원희 선교사의 거룩한 여정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이사야서 52장 7절
 
 
프롤로그

chapter 1 소명으로 살다
선교의 필요충분조건 / 사랑의 기적 / 하나님이 고치신다 / 끊임없이 배우다 / 환자는 약자다 / 아! 코리안 닥터 / 피를 주어 살린 환자

chapter 2 성령님과 함께하다
잘 낫게 해주시는 은혜 / 기도로 살린 생명 / 다시 열린 병원 / 생명을 걸고 생명을 살리다 / 위대한 무기 / 걸을 힘을 주세요

chapter 3 생의 가운데 토막을 드리다
사막에 두어도 살아날 소년 / 죽음의 문턱에서 / 얼굴도 마음도 예쁜 간호사 / 위대한 스승들 / 정미소 병원 / 있는 대로 내세요 / 영과 육이 구원받는 기쁨 / 세상과 복음에 빚진 자 / 주저 없는 대답 / 세 번의 어퍼컷 / 보통의 크리스천

chapter 4 부르심을 따라 떠나다
왕초보 선교사 / 돈 대신 먹을거리를 주다 / 한 달 만에 도착한 전보 / 더러움을 참는 연습 / 모르고 지나간 병 / 삶이 곧 선교다 / 대나무 교회 / 멸치 네 마리만 주세요 / 예수님 때문에 삽니다

chapter 5 가장 낮은 곳으로 가다
소문난 진료소 / 이발소 소동 / 반갑지 않은 손님 / 방글라데시 새마을운동 / 잠자는 호랑이 스리랑카 / 섬김으로 일으킨 병원 / 에티오피아에 흘려보낸 축복 / 부르심에 합당한 삶 / 은휘의 꿈 / 중보기도로 타오르는 불꽃

에필로그
감사의 말
 
 
“하나님이 부르실 그날까지 믿음 하나로 충분합니다”

나이가 들어도 하던 일을 계속할 수만 있다면 사실상 은퇴란 없다고 본다.
그저 현장에서 같이 어울려서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까지 그렇게 섬기며 살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하나님이 부르시는 장소가 한국일 수도 있고 네팔일 수도 있다.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실 자리가 어디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언제 어디서라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그 부르심을 따를 뿐이다.
살아도 천국이고 부르시면 정말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닌가.
“인생의 황금기를 주님께 드리다!”

“우리도 그냥 보통 사람들처럼 살 수 없어요?”
나는 아내의 말에 적잖이 당황했다.
‘그렇다면 나는 보통 사람이 아니란 말인가?’
며칠 동안 기도하고 생각했다.
결론은 나는 보통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예수님을 믿고, 성경 말씀을 따르는 보통의 크리스천이었다.
나는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
생선의 가운데 토막 같은 인생을 하나님께 드리고 싶다고 아내를 다시 설득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인도하시면 사람의 계획대로 되는 일은 없다.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확실하고, 그런 후에 기도했다면 갈 길은 밝히 보인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등을 떠밀면서 날더러 “이리 가시오, 저리 가시오”했다면 오히려 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기도 가운데 인도하심을 따라 결단하고 헌신했기에 나는 행복했다.
어려울수록 오히려 감사하게 되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교지로 향하는 나에게는 앞으로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수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_ 본문 중에서
 
 
[ 출판사 책소개 ]
이 책은 2011년 3월에 개봉한 기독 다큐멘터리 영화 <소명3-히말라야의 슈바이처>의 주인공 강원희 의료선교사의 자전 에세이다. 1982년 49세 나이로 네팔 히말라야에 첫발을 내딛은 지 올해로 30년째, 줄곧 오지의 병원과 무료진료 현장을 떠나지 않고 있다. 80을 바라보는 현재도 세 번째로 들어간 네팔에서 KOICA가 세운 병원에서 의료 봉사중이다.

그는 세브란스 의대 시절부터 무의촌 봉사에 관심을 가졌는데, 슈바이처의 정신을 본받아 의료봉사를 하는 대학동아리 활동을 했고 그곳에서 간호사 출신인 지금의 아내(최화순)를 만났다. 전주 예수병원에서 수련의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설대위(David John Seel, 전주 예수병원 원장), 고허번(Herbert Augustus Codington, 광주 제중병원 원장) 같은 헌신적이고 훌륭한 미국인 의료선교사를 만났다. 그들은 각각 전주와 광주의 성자(聖者)로 불릴 정도로 지역 주민들의 존경을 받았는데, 강원희는 그들에게서 의술뿐 아니라 사랑과 봉사의 정신을 직접 보고 배웠다.

베트남전에서 군의관으로 복무를 마친 후, 꿈꾸던 무의촌 진료를 위해 강원도 간성에서 정미소를 개조한 병원을 열었다. 세브란스 의대(현 연세대)를 나와 전문의 과정까지 마친 의사가 시골에 개업을 한 일은 당시로서는 간첩으로 의심받을 정도로 특별했다. 의료 장비가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도 어려운 외과수술을 척척 해내던 그를 눈여겨본 지인이 그에게 속초에 병원을 열도록 강권했고, 속초에 대동의원을 개업하자 다른 지역의 환자까지 몰려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세상과 복음에 빚진 자신을 보게 되면서 선교사가 되어 한국보다 더 열악한 나라에 의술로 사랑을 펼치리라 다짐한다. 하지만 이러한 다짐은 현실의 상황에 부딪혀 수년간 연기된다. 그러던 1980년경, 교통사고를 비롯해 병원 내의 어이없는 의료사건들을 겪으며 하나님의 부르심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선교사로 나갈 결심을 교회와 가족에게 말했지만, 의사가 선교사가 되는 의료선교는 당시만 해도 너무나 생소한 일이라서 그를 지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보통 사람처럼 살자는 아내의 말에 그는 “머리도 꼬리도 아닌 생선 가운데 토막 같은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주님께 드리고 싶다”며 설득했다. 그리고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한경직 목사의 권면을 따라, 당시 의료 선교사 파송이 절실했던 네팔로 떠났다.

그는 병원으로 찾아오지 못하는 가난한 환자들을 찾아 주말에는 아내와 오토바이를 타고 왕진을 다니고, 며칠에 걸쳐 바위산을 넘어 이동진료를 다녔다. 자신의 피를 수혈해 중환자를 살리고, 퇴원하는 환자의 집에 식료품을 사들고 가고, 사회에서 대접받지 못하는 거지와 행려병자나 난민촌 등지를 찾아다니며 상처를 치료해주고, 그들의 가슴에 스스럼없이 청진기를 댔다. 그런 그를 현지인들을 ‘히말라야의 슈바이처’라고 불렀다. 그는 직접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없는 나라에서 말이 아닌 삶으로 복음을 구현했다. 하나님은 청진기 하나만을 들고 산을 넘어 환자를 진료하는 그에게 놀라운 기적의 역사로 함께해주셨다.

네팔에서 3년 반의 1차 사역을 마치고 방글라데시에서 4년, 스리랑카에서 4년을 일했다. 그는 선교사라고 해도 7년마다 한 번씩 누릴 수 있는 안식년도 마다했다. 네팔에서 두 번째로 사역하던 도중에 한국에 선교사가 세운 병원(안동성소병원)이 운영이 어려워 문을 닫을 위기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으로 돌아와 부임 2년여 만에 정상화시키고, 다시 아프리카 에티오피아로 떠났다. 7년의 아프리카 사역을 마치고 2009년에 귀국한 그에게 사람들은 “이제 그만 쉴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권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여전히 선교지의 영혼을 향한 사랑의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여생을 히말라야에서 마무리한다는 심정으로, 2010년에 세 번째 네팔 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는 세브란스 출신 1호 의료선교사로 2000년 연세의학대상을 수상한 데 이어 2002년 MBC사회봉사대상을 수상했고, 1990년 보령의료봉사상과 1996년 일가상을 수상했다. 그는 5월 14일에 열리는 연세대 졸업 동문 재상봉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일시 귀국할 예정이다. 그는 올해로 연세대 졸업 50주년을 맞이했다.
 
 
강원희
1934년생으로 전쟁과 가난을 혹독히 겪었던 그는 세브란스 (현 연세대) 의대에 다닐 때부터 무의촌 봉사에 힘을 기울였다. 수련의 과정을 거친 후, 자발적으로 당시 무의촌이나 다름없었던 강원도 간성의 허름한 정미소를 개조한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다 1970년 말에 속초에 병원을 개업하고, 10여 년간 진료를 했다.
다른 도시에서도 환자들이 찾아올 만큼 유능한 외과의사로 살던 그는 간신히 목숨을 건진 교통사고를 비롯해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일들을 겪으며 이전에 품었던 의료 선교에 대한 거룩한 부담을 다시 갖게 되었다. 하지만 성업(盛業)중인 병원을 내려놓고 선교사가 되겠다는 그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가족과 지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내 삶의 머리나 꼬리가 아닌, 가운데 토막을 하나님께 드리고 싶다’며 아내를 설득했다.
그리고 1982년 49세 되던 해, 고(故) 한경직 목사님의 권면으로 당시 최빈국이라 할 만큼 의료나 모든 면이 낙후되어 있던 네팔 히말라야로 선교의 첫발을 내딛는다. 그는 병원에 오는 환자들뿐 아니라 중병에 걸리거나 다쳐도 병원에 올 수 없는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찾아 간호사 출신인 부인 최화순 권사와 함께 이동진료 사역을 했다.
그러는 중에 의사로서의 한계를 절감하는 한편, 무한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크신 은혜에 감격하여 환자의 빈부귀천에 상관치 않고 진심으로 섬기게 되었다. 자신의 피를 수혈하여 중환자를 살려내고, 환자가 퇴원하면 식료품을 사들고 집에까지 가서 섬기는 그를 가리켜 현지인들은 ‘히말라야의 슈바이처’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2010년, 그는 77세의 고령에도 ‘하나님이 부르실 그날까지 은퇴는 없다’는 마음으로 네팔로 3차 의료 선교를 떠나 현재 사역 중이다. 네팔(10년)과 방글라데시(4년), 스리랑카(4년)와 에티오피아(7년) 그리고 국내 사역(3년)까지 약 30년간 삶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사이 그의 머리는 히말라야의 만년설처럼 희어졌지만, 그의 가슴은 여전히 구령(救靈)의 열정으로 붉게 타오르고 있다.
1990년 보령의료봉사상, 1996년 일가(一家)상, 2000년 연세의학대상, 2002년 MBC 사회봉사대상 등을 수상했으며, 2011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소명3-히말라야의 슈바이처>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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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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