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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BKC강해주석(14) - 예레미야 / 예레미야애가 (개정2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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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스신학교 교수진들이 편집한
강 해 주 석!
[이 책은]
‘지난 30여년 간 수많은 독자들이 애용한
두란노 BKC 강해주석!’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와 ‘넓이’를 더한다!
강해설교와 QT를 더욱 효과 있게!
《두란노 BKC 강해주석》은 권위를 자랑하는 달라스 신학교의 교수진들이 직접 편집한 The Bible Knowledge Commentary를 원문 그대로 옮긴 성경 주석서이다. 성경 전체를 간단하고 명확하게 관찰하고 있는 《두란노 BKC 강해주석》은 강해설교와 QT의 핵심을 짚어 주고 뼈대를 잡아 주는 현대인의 주석서로 손색이 없다. 성경을 가까이하고 보다 깊이 있게 성경을 알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훌륭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 목회자, 신학생
- 성경공부 리더, 교사
- 깊이 있는 성경공부를 원하는 평신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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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서론
개요
주해
Ⅰ. 서론(1장)
A. 예언자의 배경(1:1~3)
B. 예언자의 부르심(1:4~10)
C. 예언자의 환상에 대한 확증(1:11~16)
D. 예언자의 도전(1:17~19)
Ⅱ. 유다에 관한 예언(2~45장)
A.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2~25장)
B. 유다와의 개인적인 충돌(26~29장)
C. 이스라엘과 유다를 위한 미래의 위안(30~33장)
D. 유다의 현재의 재앙(34~45장)
Ⅲ. 열방을 향한 예언들(46~51장)
A. 애굽을 향한 예언(46장)
B. 블레셋을 향한 예언(47장)
C. 모압을 향한 예언(48장)
D. 암몬을 향한 예언(49:1~6)
E. 에돔을 향한 예언(49:7~22)
F. 다메섹을 향한 예언(49:23~27)
G. 게달과 하솔을 향한 예언(49:28~33)
H. 엘람을 향한 예언(49:34~39)
I. 바벨론을 향한 예언(50~51장)
Ⅳ. 결론(52장)
A. 예루살렘의 멸망(52:1~23)
B. 특정 사람들의 운명(52:24~34)
참고문헌
<예레미야애가>
서론
개요
주해
Ⅰ. 첫 번째 애가: 죄로 인한 예루살렘의 훼파(1장)
A. 예루살렘의 황량함에 대한 예레미야의 애가(1:1~11)
B. 자비를 구하는 예루살렘의 기도(1:12~22)
Ⅱ. 두 번째 애가: 예루살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2장)
A. 하나님의 진노(2:1~10)
B. 예레미야의 탄식(2:11~19)
C. 예루살렘의 기도(2:20~22)
Ⅲ. 세 번째 애가: 예레미야의 반응(3장)
A. 예레미야의 고뇌(3:1~18)
B. 예레미야의 희망(3:19~40)
C. 예레미야의 기도(3:41~66)
Ⅳ. 네 번째 애가: 여호와의 진노(4장)
A. 포위 전과 후의 비교(4:1~11)
B. 포위된 원인(4:12~20)
C. 공의를 구함(4:21~22)
Ⅴ. 다섯 번째 애가: 남은 자들의 반응(5장)
A. 기억하심을 바라는 남은 자들의 기도(5:1~18)
B. 회복을 구하는 남은 자의 기도(5:19~22)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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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예레미야는 유다가 멸망했던 암흑기에 사역한 최초의 예언자였다. 당시는 하박국, 스바냐와 같은 예언자들의 활약이 눈에 띄는 때이기도 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있던 에스겔과 함께, 하나님 말씀의 강렬한 메시지로 유다의 어두운 죄를 폭로했던, 당대의 활활 타오르는 횃불이었다. 그리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백성을 향해 눈물을 흘린 선지자였다.
저자 및 연대
이 성경의 저자는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1:1)이다. 예레미야(이르메야후[Why"m.r>yI], 혹은 이르메야[hy"m.r>yI])라는 이름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암시하고 있는 의미는 ‘여호와께서 세우신다’, ‘여호와께서 높이신다’이며 ‘여호와께서 던지신다’는 의미도 내포한다. 예레미야의 아버지 힐기야는 레위 지파 제사장 중 한 사람으로, 요시야 왕 때에(참조, 왕하 22:3~14) 성전에서 율법을 발견한 사람과 동일 인물은 아닌 것 같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북동쪽으로 4.8킬로미터정도 떨어진 작은 마을 아나돗에 살았다(참조, “예레미야와 에스겔의 세계” 지도). 아나돗은 요시야가 제사장 아론의 후손들에게 준 성읍들 중 하나였다(참조, 수 21:15~19). 에스겔(겔 1:3), 스가랴(슥 1:1. 참조, 느 12:1, 4, 16)와 마찬가지로 예레미야도 제사장 가문에서 출생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예루살렘의 제사장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증거가 없다.
예레미야의 사역은 “요시야가 다스린 지 십삼 년”(1:2)부터 예루살렘 사람들이 포로가 된 시기까지이다(1:3). 이러한 사실로 봤을 때 예레미야는 BC 627년경부터 적어도 BC 586년까지 예언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밖에도 예레미야서 40~44장을 보면, 예레미야의 사역은 예루살렘 멸망 이후 적어도 BC 582년까지 계속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예레미야서에는 연대기적 언급이 포함된 예언들이 기록되어 있어 구체적인 날짜를 계산해 낼 수 있다.
예레미야서에 나타난 다양한 예언들이 어떻게 편집되었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아직도 어려운 문제로 남아 있다. 많은 학자들은 이 책이 후대에 가끔씩 우연히 발견된 예레미야(혹은 그의 제자들)로부터 들은 하나님의 말씀들을 선택해서 모아 정리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이러한 의도적인 순서들의 존재를 거부한다.
도표 “예레미야 예언의 연대”는, 예레미야의 예언들을 연대기적으로 어떻게 정리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여기서 세 가지 사실을 주목해 볼 수 있다.
(1) 분명히 연대기적 일관성은 없다. 에스겔서의 예언들이 연대기적인 순서를 따라 정리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예레미야서는 가끔 서로 떨어진 연대들을 모아 예언을 삽입했다.
(2) 예레미야의 메시지들은 억압, 격변, 빈곤의 시기에 주어졌다. 1~6장, 11~12장은 요시야의 개혁 시기와 대략적으로 일치한다. 다음으로 중요한 예언 활동은(7~10장 14~20장 22:1~19 26장) 느부
갓네살의 힘이 왕성해질 때였다. 예레미야의 나머지 예언들은 1차 바벨론 포로, 2차 바벨론 포로, 바벨론에 대한 반란 모의, 그리고 바벨론의 마지막 포위 전투 이후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로 잡혔을 때 선언됐다.
(3) 예레미야서는 다양한 시대적 발전 단계의 증거를 가지고 있다. 즉, 예레미야의 예언 사역의 발전 단계 각각에 해당하는 예언들을 분명한 편집 양식에 맞게 수집해서 재배열했다(참조, 25:13 30:2 36:2, 32). 1~51장까지의 최종적인 형태는 예레미야가 애굽에 포로로 잡혀간 이후에(참조, 51:64) 완성되었다. 그런데 52장은 어떠한가? 예레미야 52장은 여호야긴이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된 시기인(52:31) BC 561년 이후의 어떤 시기에 기록된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은 열왕기하 24장 18절부터 25장 30절까지의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 즉 이 마지막 장은 열왕기서의 저자가 예레미야의 예언들을 첨가하여 편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심판에 대한 예레미야의 예언의 성취와 여호야긴의 해방의 내용으로, 하나님의 회복과 축복을 예시하고 있다.
역사적 배경
예레미야의 사역은 유다 역사 마지막 50년에 걸쳐서 행해졌다. 예레미야는 유다의 마지막 선왕 때인 요시야 왕 13년(참조, 1:2), BC 627년에 부르심을 받았다. 요시야의 통치는 다윗 왕권이 우상숭배의 악함과 이방의 침략으로 전복되기 전 마지막 빛과 같은 시대였다. 요시야가 왕위에 올랐을 때의 나이는 8세였고, 유다를 위해서 31년 동안 안정된 통치를 했다.
유다는 므낫세 왕이 55년 간 통치하며 촉진시킨 우상숭배로 내적인 어려움을 겪었다(왕하 21:1~9). BC 622년(요시야 18년)에 유다는 그의 마지막 영적인 갱신(참조, 왕하 22:3~23:25)을 경험했다. 성전 안에서 모세의 율법을 되찾은 일을 계기로, 요시야는 우상을 제거하는 작업을 강력히 추진하기 시작했다. 요시야는 종교개혁에 있어서 외적인 형식들을 계속 제거해 나갔다. 그런데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흡족한 결과를 가져오지는 못했다. 결국 요시야가 죽자 백성은 다시 사악한 길로 들어섰다.
국제적으로는 수세기 동안 고대 근동 지역을 지배해 왔던 위대한 제국 앗수르 제국이 붕괴 위기에 처해 있을 때였다. 수도 니느웨는 BC 612년에 멸망을 당했고 BC 609년에는 퇴각하는 앗수르 군대가 하란에서 패배했다. 한때 앗수르에 포위되어 있던 잔존자들은 유브라데강을 건너 갈그미스를 충격에 빠뜨리게 한 적도 있었다(참조, “예레미야와 에스겔의 세계” 지도).
앗수르의 멸망은 더 큰 세력인 바벨론의 부흥의 계기가 되었다. BC 626년 10월에 갈대아의 왕자 나보폴라사르가 바벨론 외곽에서 앗수르 군대를 패배시켜 바벨론의 왕권을 주장하게 되었다. 그가 세운
왕국은 신바벨론 제국이었다. 나보폴라사르는 제국을 견고하게 만들고 BC 616년에는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진격했다. 결국 바벨론과 메데 군인들로 구성된 연합 군대가 BC 612년에 니느웨를 함락시켰던 것이다.
바벨론의 부흥과 앗수르의 멸망은 그 지역 전체에 힘의 재분배를 가져왔다. 요시야가 통치하고 있던 유다는 앗수르 지배의 멍에로부터 해방되어 잠시나마 국가 독립의 기쁨을 맛봤다. 그러나 독립은 BC
609년의 사건들로 막을 내렸다.
애굽은 앗수르의 멸망을 확장의 기회로 삼고자 엿보고 있었다. 약화된 앗수르가 바벨론의 서방 진출을 저지하는데 완충국으로서 유지될 수 있다면, 애굽은 앗수르에게 초기에 잃었던(유다를 포함한) 서팔레스타인의 대부분을 쉽게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 애굽은 강력한 앗수르를 두려워했지만, 지금은 강력한 바벨론의 번영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애굽은 앗수르와 바벨론 사이의 충돌에서 앗수르의 편을 든 것이다. BC 609년 애굽의 왕 느고 2세는 잃었던 영토를 되찾기 위한 최후의 시도로서 앗수르의 남은 군대를 돕고자 대군대를 이끌고 하란으로 진군했다.
요시야는 애굽이 승리했을 때의 결과가 유다에 어떤 영향이 미칠지를 알고 있었다. 그는 애굽이 앗수르를 대신해서 유다의 감독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군대를 보내 애굽 군대의 진군을 막으려고 했다. 전투는 므깃도 골짜기에서 벌어졌으나 유다 군대가 패하고 말았다. 요시야는 그 전투에서 전사했고 애굽 군대는 하란을 향해 계속 진군했다(대하 35:20~24).
요시야의 공격이 그 전투 결과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는 잘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이 사건으로 앗수르가 애굽 군대의 도움을 제공받을 적절한 시기를 놓친 것이 분명하다. 결국 앗수르는 영토를 재탈환하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대세에서 이탈했다.
당시 갈그미스 성을 경계로 하여 애굽과 바벨론은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었다. 유다의 패배 후에 애굽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고, 유다는 요시야의 후임으로서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추대했다. 그러나 여호아하스는 통치 3개월 만에 느고에 의해 폐위를 당해 애굽으로 끌려갔다(참조, 왕하 23:31~32, “유다의 마지막 다섯 왕들” 도표). 느고는 유다의 국고를 약탈해 갔으며 요시야의 다른 아들인 여호야김을 그의 분봉왕으로 임명했다(왕하 23:34~35).
BC 605년에 힘의 균형에 또 다른 주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4년 동안 애굽과 바벨론은 갈그미스에서 서로 우위를 차지하지 못하면서 대치 상태에 있었다. 그후 당시 바벨론의 왕자 느부갓네살 2세가 이끄는 군대는 갈그미스에서 방어선을 뚫고 도망가는 애굽 군대를 애굽의 국경 가까이까지 추적하여 결정적인 승리를 얻었다.
같은 해에 일어난 또 다른 두 가지 사건이 유다의 역사에 영향을 미친다. 첫째는 갈그미스 전투 후 여호야김이 애굽과 동맹을 파기하고 바벨론과 제휴하여 느부갓네살의 한 분봉왕으로 그를 섬기는 것에 동의한 사건이다(왕하 24:1). 둘째는 8월 15일 바벨론의 왕 나보폴라사르가 사망하여 느부갓네살이 진격을 중단하고 바벨론으로 돌아가 왕위를 차지한 사건이다.
느부갓네살은 분봉왕들을 임명한 후 계속적인 충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 인질 정책을 취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획득한 영토에 대한 통치를 견고히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정책의 일환으로 다니엘을 포로로 데려가기도 했다(단 1:1~6).
유다는 BC 601년까지 바벨론의 속국으로 남아 있었다. 당시 느부갓네살은 애굽을 상대로 다시 한 번 팔레스타인 진격을 감행했으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오히려 바벨론 군대는 패배를 당하고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여호야김은 정치적인 변덕쟁이였다. 느부갓네살이 애굽과의 전투에서 승리했을 때는 바벨론 편이었던 그는, 바벨론이 패배하자 다시 동맹관계를 바꿔 애굽을 도왔다(참조, 왕하 24:1). 그러나 이것이 치명
적인 실수였다.
BC 598년 12월에 느부갓네살의 군대가 공격을 준비했다. 공격의 주 목적은 바벨론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을 때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예루살렘(그리고 다른 속국들)에게 알려 주기 위해
서였다. 여호야김은 이때 사망했으며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했다. 여호야긴은 바벨론에 대항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하여 BC 597년 3월에 항복을 하고 말았다.
느부갓네살은 유다의 도시를 노략질하고 주요 인사들을 제거했다. 그리고 새로운 왕으로 여호야긴의 삼촌 시드기야를 권자에 올렸다. 여호야긴은 3개월 통치 후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긴과 함께 만 명의 지도자와 기술자, 그리고 예루살렘의 병사들을 바벨론으로 데려갔다(참조, 왕하 24:12~16). 이 사건은 예언자 에스겔이 바벨론으로 유배되었을 당시의 일일 것이다. 5년 후에 에스겔은 바벨론에서 예언자적 사역을 시작했다.
한편 유다의 새로운 왕 시드기야는 허약하고 마음의 동요가 심했다. 결국 유다는 파멸하고 말았다. 그의 11년 통치는 영적인 타락과 정치적 불안정에 의해서 끝이 났다. 그는 과거의 실패를 교훈삼기보다는 그것을 되풀이한 것으로 보인다.
BC 588년에 애굽의 왕 호브라의 등극과 함께, 유다는 다시 한 번 바벨론에 대한 반란의 유혹을 받았다(왕하 24:20~25:1, 렘 52:3~4). 속국들의 연합(유다, 두로, 암몬)은 바벨론의 통치 하에 남아 있기를 거부했다. 그러자 느부갓네살의 반응은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 성을 둘러쌌고 장기간의 포위가 시작된 것이다. BC 586년 7~8월에 걸쳐 예루살렘의 군대는 패배하고 성은 파괴됐다.
구조와 문체
예레미야서에는 네 개의 중요한 구조 혹은 문체적인 특징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1. 연대기적 순서를 무시함
‘저자와 연대’에서 언급했듯이 본서는 연대기적 진행을 하지 않고 있다. 예레미야는 예언들을 그의 활동 무대에서 모았으나 그것들을 연대기적으로 편집하지는 않았다. 예를 들면 백성에 대한 그의 예언들은 사역 초기에 쓴 것들이다(참조, 25:1, 13). 이런 예언들의 내용이 본서의 끝부분에도 다시 기록되어 있다(참조, 46:1~49:33). 따라서 본문 형태의 순서에 관해서는 그 나름대로의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2. 자서전적인 성격을 띔
예레미야서에는 세 가지 문학적인 형태가 발견된다. 첫째, 시적인 설교, 둘째, 산문체적 설교, 셋째, 산문체이다. 이러한 각각의 문서들 의 배열이 예레미야서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를 제공해 줄 수 있다. 구체적으로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1~25장 : 시 또는 산문 형태의 설교가 잠깐씩 이야기와 섞여서 구 성되어 있다.
26~29장 : 산문체 설교와 이야기가 섞여 있다.
30~31장 : 시적인 설교 형태이다.
32~33장 : 산문체 설교 형태이다.
34~36장 : 산문체 설교와 이야기가 섞여 있다.
37~45장 : 연대기적 순서의 이야기이다.
46~51장 : 시적인 설교 형태이다.
52장 : 연대기적 순서의 이야기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문학적인 요소들이 본서의 내용에 중요한 변화를 주고 있 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분류한 이유는 나중에 논의될 것이다.
3. 자료의 논리적 배열
예레미야는 어떤 의도로 그의 책을 연대기적으로 정리하지 않았을 까? 가장 좋은 해답은 그가 전체적인 메시지를 백성에게 전달하기 위 해서 자료들을 논리적인 배열로 구성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예레미야 는 그의 연속적인 예언들을 모아 그것들을 논리적인 양식으로 배열했 으며, 그 배열을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주제로 발전시킨 것이다. 2~45 장은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46~51장은 이방 민족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초점을 맞추었다. 추가로 다양한 문학 양식들이 예레 미야서를 분석하는 데 도움의 열쇠를 제공하고 있다.
2~25장(시적이며 산문적인 이야기의 혼합)에서 예레미야는 유다 를 향하여 열세 가지 심판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 뒤 26~29장(산문체 설교와 이야기의 혼합)에는 백성이 예레미야와 그의 메시지에 대해 어 떤 반응을 보였는가를 담았다. 유다 사람들의 거역으로 심판은 확실 해졌으며, 예레미야는 심판이 시작되기 전에 유다의 미래 소망을 미리 언급하고 있다(30~31장은 시적인 설교로, 32~33장은 산문체 설교로 구성). 34~36장(산문체 설교와 이야기의 혼합)은 26~29장이 다룬 거 역의 주제를 이어서 다루고 있다.
유다의 파멸은 필연적인 것인데, 그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 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는 37~45장(연대기적인 순서의 이야기)에서 예루살렘의 멸망 전과 그 당시, 그리고 후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서술 하고 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의 죄 때문에 심판을 내리셨다. 하나님 이 선택한 백성조차 그들의 죄에 대한 심판을 받았는데, 하물며 다른 이방 국가들이 그 심판에서 벗어나기를 바랄 수 있을까? 46~51장(시 적인 설교)에서 예레미야는 다른 민족에게로 초점을 이동해 그들의 심판을 예고하고 있다. 예레미야는 이렇게 메시지를 만들고 구체화시 키는 데 다양한 문학적인 요소들을 빌려서 사용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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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관된 해석 방법, 최신 학문,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성경 연구를 통해 탁월한 주석이 탄생했다. 피상적인 해설이나 일관성 없는 해석 때문에 다른 주석서들에 실망한 사람에게 『두란노 BKC 강해주석』을 적극 추천한다. -워런 위어스비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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