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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당신의 영적 은사를 알라
마크 스티브 저 I 서로사랑 I 2009-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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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즈 :  150*225(mm), 3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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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선물을 연습하기

성령의 은사란 무엇인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약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영적인 은사에 목말라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은사들의 정당성을 인지하고 그것을 이해하며 그 차이를 인정하여 자신들에게 잠재해 있는 은사를 충분히 사용하는 법은 잘 알지 못한다.

마크 스티브는 은사에 대한 성경적인 나타남과 그에 대한 검토 및 그리스도인들이 오늘날 그들의 삶과 사역에 적용하는 방법을 알려 준다.

이 책은 시대에 알맞고 중요한 책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인 파워의 분야에서 진실된 확실성을 깨닫고 그들의 은사가 가져오는 책임을 완수하도록 돕는다.
 
 
 
 
서문
나의 관심사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명예와 교회의 풍성함을 위해 우리를 취하셔서 우리를 무장시키시고, 우리를 사용하길 원하신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깊이 이해시키는 것이다. 신약성경에서 은사로 번역된 단어는 헬라어로 카리스마(charisma)이다. 잠시 후에 살펴보겠지만, 이 단어에 대한 최상의 번역은 ‘은혜의 선물’이란 말이다. 그러나 현대 헬라어에서 카리스마는 생일 선물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당신과 나를 위해 최소한 한 가지의 선물을 가지고 계신다. 내 이름이 적힌 선물 꾸러미를 찾아내어 그 선물을 풀고 이를 즐겁게 사용하여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기쁨을 드리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책임이다. 쉽게 말해, 우리의 목적은 하나님의 선물을 실제로 사용하는 것이다.

1장 지혜의 말씀
‘지혜의 말씀’으로 알려진 영적 은사는 예수님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 8절에서 지혜의 말씀이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지체들에게 주시는 영적 은사 중 하나라고 가르치신다. 신자가 이 은사를 받을 때는 자발적으로 갑자기 받게 된다. 자연적인 마음은 이를 분별할 수 없고 오직 성령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드러난다. 따라서 지혜의 말씀은 성령께서 하나님의 진리를 은사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2장 지식의 말씀
바울이 말하는 ‘지식의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은사주의자들 가운데 널리 퍼진 맥락에 따라 말한다면 그가 의미한 바는 ‘한 개인의 마음이나 상황에 대한 비밀을 꿰뚫는 초자연적인 통찰력’을 말한다.
<중략>
이 장에서 나는 ‘지식의 말씀’에 관해 다르게 설명하고 싶다. 나는 이 은사에 관한 대중적인 정의가 잘못되었다고 확신한다. 분명히 고린도전서 12장 8~10절에 나온 모든 다른 은사들처럼 지식의 말씀도 영적인 기름부음이다.
<중략>
지식의 은사에서 언급한 지식은 학습을 통해 얻은 ‘일반적인’ 지식이나 심지어 연구를 통해 얻은 성경 지식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같은 성령을 따라 전달된 계시적 지식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것은 영적 통찰력이다. 동시에 한 개인의 생각을 꿰뚫는 통찰로 이 은사를 이해하는 대중적인 이해를 교정할 필요가 있다. 잠시 후 살펴보겠지만 고린도전서에 있는 다른 말씀은 ‘지식의 말씀’이 우리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생각을 아는 것임을 말해 준다. 이를 염두에 두고 나는 ‘지식의 말씀’에 대해 또 다른 정의를 제안하고 싶다.

지식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꿰뚫는 영감 있는 통찰력이며, 이는 성령이 주신 말씀으로 표현된다. 이는 계시의 은사이며, 이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은 세움을 입는다.

3장 믿음의 은사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은 ‘믿음의 은사’를 가리키는가? 두 가지 요소를 통해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바울이 믿음에 대해 사용한 말이 그가 믿음의 은사에 관해 말할 때 사용한 단어와 똑같다. 둘째, 이는 더 확신을 주는 요소인데, 그것은 위의 말씀에서 언급한 다른 현상들이 성령의 은사들에 관한 것이라는 점이다. 바울은 예언의 은사와 모든 비밀을 알 수 있는 능력과 지식을 말한다. 만일 이 세 가지가 성령의 은사라면 ‘산을 옮길 만한 믿음’도 마찬가지로 성령의 은사이다.

4장 병 고치는 은사
바울은 한 사람이 행할 수 있는 여러 다른 종류의 병 고치는 은사들(gifts)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이지,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병 고치는 여러 종류의 사역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바울은 은사적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은 여러 다양한 사역을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어떤 경우에 이 은사자는 귀신에 눌려 있는 자를 자유하도록 할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신체적 질병을 고치는 데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수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정신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참상을 겪은 사람을 온전케 할 수도 있다. 또한 그는 깨어진 관계를 즉각적으로 치유하는 데 쓰임을 받을 수도 있다. 실제로 병 고치는 은사들은 질병의 숫자만큼 다양하다.
5장 능력 행함의 은사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행한 것보다 그들이 ‘더 큰일’을 행할 것을 약속하셨다. 고별 설교에 나오는 모든 약속들처럼 이 말씀은 사도들뿐만 아니라 부활 이후에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영이신 파라클레토스로 충만한 모든 자들에게 적용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능력 행함이 중단되기보다는 계속될 것을 약속하신다. 실제로 ‘더 큰일’에 대한 주님의 약속은 예수님이 행하신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능력 행함이 있을 것을 암시한다. 이는 주님이 인간으로서 성육신하신 동안에 이와 같은 ‘역사’를 행하실 주님의 능력이 제한받으셨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더 이해가 된다. 그러나 승천하시고 나서 주님은 그분의 성령을 그분의 이름을 고백하는 모든 자들에게 부어 주실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주님이 주신 두나미스(dunamis, 권능)를 통해 두나메이스(dunameis, 능력)를 행할 수 있었다. 따라서 제자들이 이를 믿는 곳마다 그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행했다!

6장 예언의 은사
예언의 은사를 가장 훌륭하게 다룬 책 중에 하나가 제임스 듄이 쓴 <예수님과 성령>(Jesus and the Spirit)이다. 여기서 저자는 가르침의 은사와 예언의 은사를 구분한다. 그는 가르침의 카리스마를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영감 있는 통찰력으로 본다. 다른 말로 하면, 가르침은 ‘은사적 주해’이다. 그것은 기록된 말씀의 의미를 새롭게 이해하는 것이다. 반대로 예언은 하나님께서 신자에게 직접 주시는 말씀을 영감에 따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특정 상황에서 성령께서 주시는 말씀을 대언하는 것’이다. 따라서 가르침이나 예언 모두는 자연적인 적성이나 재주가 아니다. 은혜의 선물인 이것들은 우리 삶에 나타나는 성령의 역사로 여겨져야만 하며, 둘 모두가 은사적으로 주어진다. 그러나 이들의 차이는 다음과 같다. 가르침은 보수적인 기능을 하는 반면 예언은 창조적인 역할을 한다. 가르침의 은사는 성경에 관한 은사적 계시, 즉 기록된 말씀에 관해 새로운 통찰을 담고 있다. 예언의 은사는 은사적 계시를 담고 있으며, 이는 기록된 말씀인 성경과 일치하는 신선한 통찰을 담고 있다.

7장 영 분별의 은사
성경 전체에 걸쳐 영 분별의 은사를 사용한 예가 많다. 예수님은 많은 경우에 선하게 이 은사를 사용하셨다. 주님은 특히 만나는 사람들의 심리적․영적인 본질을 눈치 빠르게 인식하고 평가하실 수 있었다. 주님이 나다나엘을 만나 그에게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고 말씀하신 경우가 유명한 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에 대하여 ‘간사한 것이 없다’고 분별하셨다. 주님은 어떻게 이를 분별하셨을까? 복음서 기자는 요한복음 2장 25절에서 그 해답을 주고 있다: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주님은 계시적인 분별력으로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영의 종류를 아셨다. 따라서 어떤 사람의 심리적․영적인 본질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특히 예배의 맥락에서 중요하다.

8장 여러 가지 방언
‘방언’을 기도의 형태로 이해할 때 우리는 방언의 은사와 예언의 은사의 차이점을 보게 된다. 주된 차이는 이들의 방향성과 목적이다. 방언의 방향은 위를 향한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하나님께 말하고 사람에게 하지 않는다. 그 방향은 언제나 ‘위를’ 향한다. 깊은 잠재의식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고자 하는 충동은 ‘위를’ 향한다. 그 충동은 성령께로부터 오며, 이로 인해 신자의 언어기관은 사람의 의식으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선포하거나 노래한다. 말하자면 이 말들은 하늘로 ‘올라가는’ 찬미의 언어이다. 그러나 예언의 경우에 말의 방향은 수직적이기보다는 수평적이다. 예언의 말씀은 성령에 의해 주어지며 그리스도의 몸에게 말한다.

9장 방언 통역
바울은 “어떤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라고 쓴다. 이는 성령의 모든 은사 중에서 가장 소홀히 여겨진다. 그 이유는 이 은사는 홀로 설 수 없는 유일한 은사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통역의 은사가 ‘방언’과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방언 통역의 은사는 꿈이나 그림 그리고 다른 시각적 현상을 해석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능력이 아니다. ‘계시’를 평가하는 것은 ‘영 분별’의 영역에 속한다. 우리는 바울이 단어를 정밀하게 사용한 것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 은사는 ‘방언 통역’으로서 공중 예배에서 말한 글로스솔라리아를 회중의 모국어로 통역하는 것이다.
<중략>
이 은사가 자주 무시되는 이유는 통역의 은사가 방언의 은사에 대해 의존적인 관계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로 큰 실수이다. 진정한 방언 통역은 신유의 은사만큼이나 비범하고 기적적이다. 다른 모든 은사들처럼 통변의 은사는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성령이 주시는 영감 있는 능력이다.

결론
이 책에서 우리가 해야 할 또 다른 일은 보다 평범한 은사로 여겨지는 것들의 가치를 회복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바울이 성령의 은사를 에네르게마타(능력의 역사)로만이 아니라 디아코니아이(섬김의 행위)로 말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가 성령의 은사의 스펙트럼을 그려 본다면 모든 은사가 ‘비범한 능력의 은사’와 ‘평범한 섬김의 은사’ 사이에 들어간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중략>
서로 다른 영역, 즉 명백히 초자연적인 은사들(방언과 치유)과 더 자연스러워 보이는 은사들(서로 돕기와 긍휼함 베풀기) 사이에도 다양한 은사들이 연속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인식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특별한 능력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이 바울이 카리스마타라 부르는 영역에 속한다는 것이다.
 
 
 
 
마크 스티브(Mark Stibbe)

목사인 마크 스티브 박사는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상급반 장학금을 받았다. 그곳에서 그는 영어를 공부했고, 2과목 최고 득점상을 수상했다. 영어 교사를 한 후에 그는 영국 성공회에서 사역을 위해 훈련을 시작했고, 세인트존스 노팅햄에서 두 번째로 신학을 공부했다. 1989년에 그는 요한복음에 관해 박사학위를 마쳤다. 셰필드에 있는 성 마가 그래노사이드 교회의 목사이며 셰필드대학의 성서학부 강사였던 그는 현재 콜리우드에 있는 성 안드레 교회의 목사이다. 선구적인 은사주의 신학자인 그는 국내외적으로 인기 있는 작가이며 강사이다. 그는 앨리와 결혼했으며 슬하에 네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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