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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익숙한 교인들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설교에서 신학이 몸이라면, 인문학은 설교자가 입어야 할 옷이다.
인문학의 옷을 입고 있다면 설교는 이제 숙제가 아니라 축제가 된다!
치열한 설교 연구가이자 ‘아트설교연구원’ 대표인 저자가 목회자의 설교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 줄 책을 들고 왔다. 설교를 오래 혹은 많이 했다고 실력이 정비례할까?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설교자는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은 물론, 청중을 이해해야 진리를 제대로 전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설교자가 신학에만 머물러 있다. 하지만 청중과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설교자는 끊임없이 그릇을 키워야 한다. 특히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인문학을 공부해야 한다. 또 청중과 공감하고 소통하기 위해 문학적인 요소, 즉 글의 논리성, 구성 능력, 탁월한 문장력도 중시해야 한다.
설교에서 신학이 몸이라면 인문학은 옷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설교에 인문학의 옷을 입혀야 한다고 하면 혹자는 항변할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무시하는 것 아닌가? 말씀만으로 충분하다. 설교에 인문학적 요소를 입히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반증일 뿐이다.” 그러나 예수님도 설교하실 때 설득의 기법인 수사학을 사용하셨다. 청중과 소통하기 위해 비유를 사용하신 것이다. 누구보다 인간을 이해하셨고, 핵심을 찌르는 설명을 하셨으며, 설득을 위한 논증을 펼치셨다. 이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중세시대는 영적인 요소만으로도 설득이 충분했다. 하지만 문화가 세상을 주도하는 21세기는 영적인 요소만으로 복음을 전하기가 턱없이 힘들다. 그들에게 다가가려면 그들에게 익숙한 언어 표현법, 즉 인문학적인 요소를 사용해야 한다.
설교 철학부터 인문학적 설교의 필요성, 인문학과 인본주의의 차이점, 설교의 전달 과정, 구성 방법 등 풍성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인문학적 훈련을 함으로써 단단하고 깊은 설교자가 되는 비법을 소개하는 이 책은 기존 설교 스타일에 변화를 주어 청중과 소통하고 싶은 목회자, 신학과 인문학의 두 날개로 비상하고 싶은 목회자에게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대나무가 자라듯 폭풍 성장하게 하는 이 책을 쥐고 있다면 설교는 이제 숙제가 아니라 축제가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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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프롤로그
Part 1. 설교의 그릇을 키워 주는 인문학 Chapter 1. 청중과 소통하는 설교를 하는가? 1. 설교는 밥상 차리기다 2. 설교 철학이 목회를 좌우한다 3. 설교는 청중에게 들려야 한다 4. 들리는 설교에는 콘텐츠가 있다 5. 설교자는 수사학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 6. 광고와 설교의 목표는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Chapter 2. 왜 인문학적 설교가 필요한가? 1. 중심을 잡고 시대에 발맞추다 2. 인문학은 인본주의와 다르다 3. 인문학은 사고력을 확장시킨다 4. 좋은 설교자는 글을 잘 쓴다 5. 예수님의 비유법은 인문학에 속한다
Part 2. 인문학의 옷을 입은 설교법 Chapter 3. 먼저 좋은 설교자가 돼라 1. 좋은 설교자가 좋은 설교를 한다 2. 좋은 설교는 숙성 과정을 거친다
Chapter 4. 사람에게 집중하라 1. 마음을 얻는 설교를 하라 2. 심리를 읽는 훈련을 하라 3. 하나님의 속마음을 읽어라 4. 예수님도 사람에게 집중하셨다
Chapter 5. 설교는 전달이다 1. 원 포인트(one point)로 설교하라 2. 도입, 낯설게 하라 3. 적용, 구체적으로 하라 4.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하라
Chapter 6. 설교의 구성 요소를 장악하라 1. 설교의 구성 능력은 강력한 무기다 2. 구성은 디자인 역할을 한다 3. 본문 보기, 제목이 나오게 된 동기를 밝히라 4. 반전이 설교의 역동성을 만든다 5. 구성의 중심,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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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친구와 설교의 구성과 글에 대해 대화한 적이 있다. 그 친구는 많은 설교자가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지 못해서 오는 문제가 심각하다고 했다. 따라서 설교자는 성경의 바른 해석 즉 신학 공부를 더 해야 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설교자들은 성경을 바르게 풀이해 주는 것으로 족하다고 했다. 이것은 이 친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많은 설교자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종종 듣는다. 그들은 설교자는 성경 읽고, 기도하고, 전도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안타깝기만 하다. 많은 교인이 이해되는 설교, 구성이 좋은 설교를 듣고자 한다. 교인이 은혜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성경의 해석 문제보다도 구성과 글의 문제일 경우가 더 많다. 나 역시 과거에는 설교를 구성하며 반전을 거의 사용한 적이 없다. 문학적 구조 없이 성경 말씀을 풀이하고 적용하면 되었기 때문에 반전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독서를 하면서 반전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어떤 글이든 갈등, 절정, 반전의 요소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나는 설교자에게 구성, 특히 문학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를 주의 깊게 살피기를 권한다. [70쪽]
인문학자의 특징은 세상과 사람에 정통하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인문학자였다. 예수님만큼 세상과 인간을 이해한 사람이 없다. 예수님은 소통의 달인이었다. 예수님은 사람과 섞여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생활하셨고,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전하셨다. 그뿐인가? 예수님은 비유법을 통해 설교하셨다. 비유법은 수사학이다. 수사학은 인문학의 중심에 있는 학문이다. 바울은 또 어떤가? 그 역시 인문학자라 할 수 있다. 바울이 신학만을 고집했다면 유대인은 물론 헬라인, 로마인에게까지 복음을 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물론 많은 설교자들의 멘토인 바울이 인문학자로서 세상, 인간과 소통했다면 설교자는 당연히 신학자이자 인문학자여야 한다. 설교자는 하나님과 청중의 중간에 서 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하고 청중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 신학이 필요하다. 인간을 알기 위해 인문학이 필요하다. 따라서 설교자는 신학을 깊이 공부하는 동시에 인문학을 깊이 있게 공부해야 한다. [74쪽]
설교자가 인문학에 관심을 갖는 것은 설교자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선행 지식이다. 문제는 설교자가 인문학을 강조하면 인본주의자로 색안경을 끼고 보는 편협한 시각이다. 인문학과 인본주의는 본질적으로 완전히 다르다. 인문학은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학문이다. 인본주의는 하나님보다 인간에게 더 높은 가치를 두는 사상이다. 반면에 신학과 인문학은 같은 색을 띤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인간이 보이고, 인간을 알면 알수록 하나님이 답이라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신학과 인문학은 하나다.. [76쪽]
설교에서 구성이 중요한 것은 마치 제품을 구입할 때 디자인을 따지는 것과 같다. 자동차, 전자 제품. 옷 등을 구입할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이 디자인이다. 만약 디자인이 형편없으면 사람들의 관심은 줄어든다. 많은 사람이 성능은 기본이고, 남다른 디자인의 제품을 원한다. 사람이라면 보기 싫음이 아니라 아름다움에 저절로 눈이 가기 때문이다. 설교에 있어서 바른 해석은 제품의 ‘성능’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설교에서의 구성은 제품의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청중의 주목을 받는 설교를 하려면 설교 디자인, 즉 구성을 잘해야 한다. [171쪽]
예수님은 반전의 명수였다. 지도자를 기대한 백성들 앞에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셨고, 예수님을 섬기기 위해 애를 쓰는 마르다에게 “마리아처럼 내 옆에서 말씀 듣기를 선택하는 것이 더 좋다”고 하셨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전개다.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예수님의 설교에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설교에 반전을 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의식적인 노력과 지력 없이는 자칫 내용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반전 있는 구성을 하려면 전제 돼야 할 몇 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 논리성이다. 둘째, 사고력이다. 셋째, 반전을 만들 수 있는 지력이다. 위의 세 가지는 다른 말 같지만 결국 같은 맥락이다. 즉 설교에 반전 있는 구성을 하려면 ‘지적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183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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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설교 연구가인 저자는 ‘아트설교연구원’ 대표다. 하나님께는 ‘간절함’으로, 자신에게는 ‘절실함’으로 살아가는 목회자인 그는 ‘중도 포기’는 없고 ‘자기 뽀개기’를 통해 교회의 갈 길을 찾아가고자 한다. 교인들에게 ‘설교가 들리지 않는다’는 볼멘소리를 듣고 지천명 때 독서를 시작했다. 10년 만에 5,000여 권의 책을 읽었고, 지금은 매일 글을 쓰며 책을 집필하고 있다.
설교를 오래 혹은 많이 했다고 실력이 정비례할까?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설교는 시대와 어울려야 한다. 따라서 설교자는 끊임없이 그릇을 키워야 한다. 저자는 그 핵심이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는 것이라고 피력한다. 설교에서 신학이 몸이라면 인문학은 옷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인문학적 훈련을 함으로써 단단하고 깊은 설교자가 되는 비법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했다. 서울의 성문교회와 왕십리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했으며, 지금은 서울 잠실에서 주담교회를 섬기고 있다. 아트설교연구원 설립 후 8년 이상 전국(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을 다니며 목회자들에게 독서, 설교 구성,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으며, 성도들에게도 글쓰기와 책 쓰기를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설교는 글쓰기다》, 《설교를 통해 배운다》와 누구나 독서해야 함을 주장한 《이기는 독서》 그리고 에세이로 《아침에 열기 저녁에 닫기》, 《아침의 숙제가 저녁에는 축제로》가 있다. 아트설교연구원 회원들과 함께 집필한 ‘아트 설교 시리즈’가 6권 출간되었고, 이후 10권 정도 더 낼 예정이다. 또 ‘아트 에세이 시리즈’도 세상에 나올 예정이다. 2018년에 “목회자의 설교 글쓰기”라는 주제로 <월간목회>에 연재했으며, 저널 <아트프리칭>(Art Preaching)도 발행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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